리그베다 위키는 2007년 3월 1일에 만들어진 위키 사이트이다. 개설 당시에는 엔젤하이로 산하 사이트로 이름은 엔젤하이로 위키였으며, 약칭인 엔하위키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였다. 2015년 까지는 20만 문서를 돌파하는 등 사이트가 성장하였지만, 사유화 사태로 인해 생긴 사이트인 나무위키한테 사실상 포지션을 넘겨주었다.
주소 | rigvedawi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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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여부 | 영리 사이트로 인식됨 |
사이트 종류 | 위키 |
사용 언어 | 한국어 |
작성된 언어 | PHP |
소유자 | 청동 |
운영자 | 함장 → 청동 → 함장 |
제작자 | 함장 |
시작일 | 2007년 3월 1일 |
현재 상태 | 접속 불가 |
역사편집
탄생편집
리그베다 위키의 시작은 엔젤하이로라는 커뮤니티의 산하 위키로 시작되었다. 참고로 엔젤하이로는 건담쪽을 주로 다루는 커뮤니티로 오덕색이 강한 커뮤니티였다. 태생 자체가 오덕색이 강한 커뮤니티 출신 사이트였으니 리그베다 위키는 오덕색이 강한 것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엔젤하이로 산하의 위키인 만큼 엔젤하이로 위키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며, 이것의 줄임말이 바로 엔하위키 미러의 영향으로 인해 유명한 엔하위키이다. 한 루리웹 유저에 따르면 비슷한 같은 건담 커뮤니티인 액시즈의 강점이기도 한 엑시즈의 데이터베이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1]
초창기 엔하위키는 오위키 기반의 사이트였다. 사실 테스트 격으로 제로보드 기반의 스킨 엔진과 L위키가 사용하는 엔진인 미디어위키를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스킨 엔진은 부족한 기능에 버그가 심했고, 미디어위키는 엔진 자체가 무거워서 삭제되었다. 물론 엔하위키 같이 개인위키가 아닌 위키는 미디어위키가 적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엔하위키는 리그베다 위키 처럼 대규모 위키 사이트가 될 지도 몰랐고, 그냥 자기들끼리 노는 사이트이 강했고 그러한 성격에서 벗어날 의지도 별로 없었다(...). 즉, 엔하위키는 본의 아니게 커진 사이트라는 것.
반면, 오위키는 호응도가 좋았고 스킨을 조작하기 쉬워 본진인 엔젤하이로와 일체감이 있도록 UI를 구성하기 좋았다. 기능이 부족했으나 속도가 빨랐고, HTML 태그 지원이 가능했으며[2] 한국인이 만든 물건인 만큼 한글화 또한 잘되어 있어 엔하위키에 사용할 위키 소프트웨어로 오위키가 채택되었다.
초창기 엔하위키는 낙서장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하위키 특유의 취소선 드립도 어쩌면 이러한 초창기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이후 건담이나 슈로대 등 정보가 모이기 시작하자 초창기의 낙서장 성격은 회석되기 시작하였고, 엔하위키는 급속도록 성장하였다.
모니위키로 엔진 변경편집
성장하고 있었던 엔하위키는 수시로 트래픽 초과 등으로 인하여 사이트가 뻗었다. 이 때문에 탄생한 사이트가 바로 엔하위키 미러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래픽 제한이 넉넉한 해외 호스팅 업체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해외 호스팅으로 이동하면서 호환성 문제가 발생하였고 위키가 커지면서 호환성 문제 외적으로도 많은 한계에 붕착하자 구 오위키 기반의 문서와 호환이 되도록 개조한 모니위키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쯔음 자체 엔진인 프로젝트二十明共筆 제작도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사이트도 망하고(...) 엔진 개발도 무산된 상태.
해외 호스팅 이전으로 인해 트래픽으로 인해 사이트가 뻗지 않았지만 엔하위키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었고, CPU 제한 초과 등으로 인해 사이트가 뻗는 현상이 종종 있었다. 이 쯔음에 엔젤하이로 친목질 사건도 일어났고, 개인 사이트 수준이었던 엔하위키는 중견 수준의 사이트로 성장하게 되어 외부의 보는 눈이 많아졌다. 결국 서버 과부하로 인해 입주하였던 해외 호스팅사한테 퇴거 명령을 받게 되었고 이후 카페24에 다시 입주했으나, 얼마 안가 카페24에서도 과부하라는 이유로 퇴거 명령을 받았다. 대다수의 웹 호스팅은 이렇게 과부하가 되면 과부하된 사이트를 쫓아내고 해외 업체, 국내 업체 다 쫓겨났으니 서버 호스팅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엔하위키는 자체 서버 기반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후 엔하위키는 5만개 문서를 돌파하게 된다.
엔하위키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엔하위키가 사용하고 있었던 모니위키는 소규모 위키에 최적화된 물건이라 비대해진 엔하위키에서는 검색은 먹통이 되었고 속도가 느려지는 한계를 보였다. 이 때 국내 최대의 모니위키 사이트였다는 것을 본 모니위키의 원 개발자인 wkpark가 관련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이때부터 wkpark는 리그베다 위키에 기술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다.
엔젤하이로에서 독립편집
한 소규모 친목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진 산하 위키는 어느새 문서수 몇 만개에서 문서수 10만개를 넘은 위키가 되었다. 엔젤하이로 자체의 규모도 커졌지만, 엔하위키보다는 작은 규모였다. 즉,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태였다. 엔하위키가 커지자 당연히 외부에서 보는 눈이 많아졌고, 원래 소규모 사이트 커뮤니티에서 우리끼리 놀려고 만든 위키는 대형 위키가 되었는데, 함장은 이를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꼈다. 결국 총괄 운영자였던 함장은 운영진 중 한명이었던 청동한테 위키 운영권을 넘기고, 엔젤하이로와 위키를 분리시켰다. 분리한 엔하위키는 리그베다 위키로 이름을 바꿨으며, 도메인 또한 rigvedawiki.net으로 변경하였다.
2013년 서버까지 완전 독립시키면서 베타 딱지를 붙었다. 여기서 말하는 베타는 베타테스트 할때 그 베타가 아니라 그냥 세대 개념으로 붙는 것이었다. 베타 시절을 거치면서 모바일에 최적화되었다. 활용도가 좋지는 않지만, 이때 TeX 문법도 추가되게 된다. 이후 문서가 늘어나면서 서버도 느려졌는데 이 때도 wkpark가 도움을 줘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후 리그베다 위키는 굳이 엔하위키 미러를 사용하지 않아도 본관에서 문서를 비교적 쾌적하게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18시간의 점검을 거쳐 감마 시대를 열었다. 한글 파일 업로드가 가능해졌고 글상자 기능이 제거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취소선에 대한 옅은 효과가 적용이 되었으며, 목차 번호 뒤에 점이 붙기 시작하였다.
특징편집
리그베다 위키의 특징이라면 가벼운 분위기. 초창기에는 진짜로 낙서장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분위기가 가벼웠다. 현 나무위키와 비교해도 리그베다 위키는 분위기가 가벼운데, 나무위키는 외부 사용자의 유입으로 인해 드립에 반대한 사용자가 많아졌고 이러한 사용자로 인해 드립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나무위키에서도 이어진 특징으로 출처를 요구하지 않는 것도 특징. 이로 인해 문서의 신뢰성이 낮아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진입장벽도 낮아서 위키백과의 출처 요구 등의 엄격한 규제에 의해 이탈한 위키백과 유저가 리그베다 위키로 유입되는 경우도 있었고, 이들은 리그베다의 양적 수준에 기여하였다.
리그베다 위키의 운영주체는 명백히 한국인어었고 국내에 서버가 있었다. 서구 선진국에 비해 표현의 자유를 덜 보장하고, 사이트 운영자의 책임 또한 서구 선진국 선진국 대비 대한민국 법 특성상 문제가 될법한 문서 예를 들어 정치 관련 문서를 작성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 법상 음란물에 해당되는 성인물에 관한 문서는 삭제 및 작성금지가 되었다. 이러한 계기로 나무위키는 해외 서버 기반의 위키로 시작하게 되었으며, 당연히 이러한 제한이 해제되었다.
각주편집
- ↑ “나무위키 진짜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루리웹》. 2021년 12월 26일에 확인함.
- ↑ 물론 미디어위키도 HTML 지원이 되는 물건이기는 한데, 외부 동영상 사이트 임베드가 안되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