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秋美愛, 1958년 10월 23일 - )는 대한민국 법조인 출신 민주당 정치인이다. 제15·16·18-20대 국회의원, 제2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리고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써의 평가는 썩 좋지 않은 편으로 국민의힘 성향 유권자는 물론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 일부도 그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추미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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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출생 | 1958년 10월 23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 | (67세, 만 66세)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
본관 | 추계 |
학력 | 한양대학교 법학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건국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과정 |
경력 | 광주고등법원 판사 새정치국민회의 인권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대표 법무부 장관 |
형제 | 2남 2녀 중 차녀 |
배우자 | 서성환 (결혼 1985) |
자녀 | 1남 2녀(아들 서재휘, 딸 서재현·서재영) |
종교 | 불교 |
소속위원회 | 외교통일위원회 |
의원 선수 | 5 |
의원 대수 | 15·16·18·19·20 |
정당 | 더불어민주당 |
지역구 | 서울 광진구 을 |
당내 직책 | 상임고문 |
웹사이트 |
생애편집
1958년 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차녀)로 태어났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학창시절 대학 동기인 서성환 변호사와는 캠퍼스 커플이었으며, 결혼 전까지 7년간 연애하였다. 서성환은 전라북도 정읍 출신이며, 다리에 장애가 있다.[2] 추미애의 집안에선 서성환과의 결혼에 반대하였으나 추미애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985년 서성환과 결혼하였다. 한편 훗날 추미애를 정계에 입문시킨 김대중은 추미애에게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출신)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3]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언론에선 추미애를 '대구의 딸이자 호남의 며느리'로 부른다.[4][5]
정치 활동편집
사법연수원 수료 후인 1985년부터 춘천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직을 역임했다.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정계 입문 권유를 받고, 같은 해 8월 27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고, 당 부대변인으로 정당 생활을 시작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듬해인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광진구 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판사 출신 야당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서울 지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초선이던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 캠프의 유세단장으로 활동할 당시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서 선거운동을 했다. 당시는 지역감정이 심하던 때였다. 직전 대통령 선거인 제14대 대선 때는 야당이던 평민당 운동원들이 대구 유세를 하다 돌을 맞기도 하던 때였다.[6] 그러나 추미애는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유세단 이름을 ‘잔다르크 유세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 저돌적으로 선전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때 언론으로부터 '추다르크'[7]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펼쳐진 새천년민주당의 당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그가 지지율이 낮을 때부터 지지하였다. 그리고 노무현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되고 난 후, 노무현의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내에서 대선 후보 교체를 위한 움직임(이른바 후단협 사태)이 일어났을 때도 후보 교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또한 대통령 선거에 임해서는 노무현 후보 캠프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무현의 당선에 일조하였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사업을 이끌며 선거운동을 위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당선자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후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분당사태 때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며 노무현과 정치적으로 결별하였다. 2004년 3월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였으나, 같은 당 의원이었던 추미애는 "① 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 ②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 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으니 현혹되면 안 된다. ③ 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다."라는 ‘3불가론’을 내세우며 탄핵에 반대하였는데, 당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탄핵에 반대한 2인 중 한 명이었다.[8]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에 반대하는 추미애에게 “당내 2인자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너 혼자 잘났냐” 등 비난을 하였고, 결국 민주당의 당론은 탄핵 찬성으로 결정되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소속 의원 2명의 서명까지 받아 탄핵을 추진하려 하였다. 그러자 추미애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숯댕이(범죄혐의로 수감된 의원)가 검댕이(노무현 대통령)를 나무랄 순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 며 결국 당론에 따라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9] 이후 국회에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개시되었다. 한편 곧이어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추미애에게 맡겼는데, 추미애는 탄핵 반대의 압도적 여론을 체감하고선 민주당이 탄핵에 동참한 것에 대해 당의 선대위원장으로서 당을 대표하여 사과하였다. 그리고 사과의 의미에서 3보1배를 하였다. 그러나 탄핵반대 여론의 역풍을 맞은 민주당은 9석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리고 이때 추미애 본인도 낙선하였다. 훗날 추미애는“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했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다음 해 실시된 18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였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고, 같은 해 실시된 제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국민통합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다. 2015년에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같은 해 말에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사태 때는 탈당파를 강력히 비판하며, 당에 잔류하였다.
2016년 4월에 실시된 제20대 총선에서 당선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6년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어,[10] 민주당 역사상 최초의 대구·경북 출신 당 대표가 되었다.[11] 2017년 5월 실시된 제19대 대선에서 당 대표로서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이로써 헌정 사상 첫 여성 집권 여당 대표가 되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당 대표로서 선거를 진두지휘해 당의 압도적 승리를 이루어냈다. 같은 해 8월 임기가 만료되어 역대 민주당계 정당 대표 중 최초로 임기를 채운 대표라는 영예를 안으며 퇴임하였다.[12]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에 의해 ‘아시아 정치 지도자 20인’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세기를 빛내고 21세기를 빛낼 여성 정치분야' 여론조사에서 유관순 열사와 함께 여성 10인으로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을 통해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유권자연맹으로부터 ‘국회의정활동 최우수상’과 전국 NGO단체연대로부터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여 받기도 하였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드러난 삼성의 내부 문건에 '돈을 받지 않는 정치인'으로 추미애가 적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13]
2020년 1월 2일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법무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여러 논란이 있었으며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배제로 인하여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면서 국무총리가 장관, 검찰총장 동시 사퇴를 건의했다. 추미애의 지지자들은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 시절의 추미애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추미애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여야를 불문하고 법무부 장관 시절을 안좋게 본다. 여권 중 추미애를 싫어하는 쪽과 홍준표는 어설프게 건드려 윤 전 총장을 대선후보 반열에 올려 준 사람이라고 까고 대다수 야권들은 수사지위권 남용 등으로 깐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는데 이재명을 비호하는 행위로 인해 추오미라는 비하어까지 나왔다.
평가편집
당대표 이전 시절편집
당대표 이전의 시절에도 평가가 썩 좋지 못하였다. 우선 새천년민주당 시절의 추미애에 대한 평가는 바닥을 기엇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노무현 탄핵 때문. 추미애는 노무현 탄핵을 주도했으며, 탄핵 관련 역풍이 불자 본인은 그러한 직격타를 맞았다. 결과적으로 탄핵 이후에 벌어졌던 총선에서 낙선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의 노동법 날치기에 동조하는 해당행위를 한 적도 있다. 당시 환노위 위원장인 추미애는 노동관계법 개정을 반대하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환노위 전체회의장에서 전원 강제 퇴거시킨 채, 한나라당 소속 환노위원들만으로 개정안을 재석 9인 중 8인의 찬성으로 가결 처리했던 전적이 있다.[14]
당대표 시절 평가편집
추미애는 2017년 대선을 이끌어 문재인을 당선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추미애의 공이며, 어러한 공이 나중에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의 공천 문제 때문에 평가가 깎였고, 결국에는 반이재명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 평가가 나빠졌다.
대표적인게 이재명 비호와 공천. 추미애는 전과 4범이자 내부총질 위험이 있는 이재명을 비호하며 그 결과 당원들사이에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경기도지사 후보에 공천되었다. 이재명을 전과 등으로 컷오프를 할 명분이 충분했지만 친이재명 인사로 유명한 정성호를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앉혀서 사실상 이재명을 비호하고 공천하였다.
당연히 권리당원들은 내부총질과 리스크의 우려로 이를 반발했고, 일부 지지자는 이에 반발하여 눈물을 머금고 자유한국당 소속의 남경필을 지지하였다. 이재명을 내부총질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물론 경기도지사에 당선은 되었지만, 그 당시 지방선거는 TK 등의 당시 자유한국당의 콘크리트인 지역을 제외하면 민주당이 개가 나와도 이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며, 실제로 제주 그리고 국힘당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한 광역단치장을 당선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화천대유 게이트 등이 터지면서 리스크 또한 현실화가 되었다.
또한 이것이 이재명을 비호하기 위한 목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15년 문재인 대표 시절, 김상곤 혁신위원장 주도로 만들어졌던 기초단체장, 광역 기초 의원 공천권은 각 시도당이 갖고 있던 공천권을 정책발전위원회로 넘기려고 시도하였고, 홍영표 등의 친문들은 이에 당연히 반발하였다.[15] 결국 정발위가 아닌 지방선거기획단을 꾸려 공천에 관련해서 논의하기로 했지만[16], 결과적으로 지방선거 공천은 좋은 공천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재명 공천을 제외하고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공천은 결코 썩 좋지 못했다. 경기도지사 외의 예시를 들자면, 제주도지사는국회의원 경력이 있는 김우남을 냅두고 문대림을 후보로 선출했는데, 당연히 공천 잡음이 큰 데다가 문대림 본인의 삽질, 그리고 문대림이 우근민[17]과의 커넥션이 있다는 논란이 제주도내에서 터지면서 무소속으로 당시 자유한국당과 거리두기 전략을 한 원희룡한테 패배했다. 또한 서초구청장 등 선거운동을 제대로 안한 곳도 있었고 이 덕분에 자유한국당이 당선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지방선거때의 공천 잡음으로 인해 추미애 지도부는 지방선거를 잘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결과적으로 선거에 승리했지만 그때는 TK 등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면 누가 나오든 민주당 인사가 당선이 되는 선거였다.솔직히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당대표는 추미애가 아니라 홍준표라 카더라
법무부 장관 평가편집
추미애 장관 시절에 참 열성적으로 검찰개혁을 위해서 애를 썼다는 건 저는 인정합니다. 그 열정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방법과 결과론을 따지면 아무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장관으로서. 따라서 장관으로서 이낙연 후보에게 0점 운운하는 이런 과도한 얘기, 누가 봐도 과도합니다. 그래서 그런 과도한 얘기를 하면 결국은 본인에게 마이너스로 돌아갑니다. 지금 이 실태가 그렇습니다.
— 설훈 의원, 9월 1일자 YTN 인터뷰에서
“ | 어설프게 건드려 윤 전 총장을 대선후보 반열에 올려 준 사람이다. 꿩한테 잡힌 매 격 | ” |
— 홍준표, 6월 2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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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윤석열의 킹메이커. 솔직히 윤석열은 추미애 집을 향해 하루에 세 번씩 절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을 재임할 시절에는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서 민주당 지지자 한테 많은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추미애가 윤석열하고 대립각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사이다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퇴임 이후 문파들 사이에서는 진지하게 평가가 이루어졌고 문파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지 않다. 결과적으로 윤석열만 부상시킨 꼴이라는 것. 위에 홍준표의 인용문이 있지만, 설훈 등 여권 인사도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등 여권 일부에서 조차 그녀의 법무부 장관 시절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추미애는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 검찰개혁에도 물론 신경은 썼겠지만 윤석열 때리기에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었고, 그로 인하여 인물난을 겪고 있는 보수 진영의 희망으로 윤석열이 떠올랐고 결국 야권 대선 주자만 만든 꼴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윤석열이 대권주자로써 부상한 시기는 소위 말하는 추윤 갈등의 시기이다. 즉, 추미애는 조국이나 박범계와 달리 검찰이라는 조직에 포커스를 맞추기 보다는 윤석열이라는 인물에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었다. 결국 윤석열의 인물 위상만 올려주고 사실상 불명예 사퇴하였다. 물론 윤석열이 검찰을 X판으로 만든 원흉이었다면 윤석열에 포커스를 맞추는게 맞다. 문제는 검찰은 윤석열 이전에 검찰 자체가 썩은 조직이라 윤석열보다는 조직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옳은 방향이었지만, 추미애는 윤석열이라는 인물에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었다.
별명편집
긍정적 별병편집
- 추다르크
- 15대 대선때 추미애는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유세단 이름을 ‘잔다르크 유세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 저돌적으로 선전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에서 추다르크가 유래되었다.
부정적 별명편집
- 애미추
- 추미애의 발언 중 하나인 "제 이름을 거꾸로 하면 애미가 되겠지요?"라는 농담과 추미애의 이름을 그대로 거꾸로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주로 반대파가 추미애를 비하할때 쓰는 대표적인 부정적인 별명이다.
- 어둠의 윤석열 선대위원장
- 법무부 장관 시절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강경한 대처가 오히려 그를 대권주자로 만든 것을 두고 비꼬는 별명이다.
- 추오미
- 추미애와 대표적인 보조배터리 브랜드인 샤오미를 합성한 말. 그녀의 20대 대통령 선거 경선때의 행보가 일부에서는 마치 이재명의 보조배터리 같다고 여겨져서 붙은 별명이다.
학력편집
- 1974년 구남여자중학교 졸업
- 1977년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 1981년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
- 1983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과정 수료
- 2001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 2012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18]
비학위 수료편집
경력편집
-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
- 1989년 인천지방법원 판사
- 1993년 전주지방법원 판사
-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
- 1996년 ~ 2000년 제15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새정치국민회의)
- 1997년 제15대 대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유세단장
- 1998년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 2000년 ~ 2004년 제16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새천년민주당)
- 2001년 새천년민주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
- 2001년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 2002년 제16대 대선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
-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미국 · 일본 특사
- 2004년 ~ 2006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 교수[19]
- 2006년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 교수
- 2007년 제17대 대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 2008년 ~ 2012년 제18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
- 2008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 2012년 ~ 2016년 제19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2012년 제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통합위원장
- 2015년 2월 ~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5년 12월 ~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 2016년 더불어민주당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6년 더불어민주당 소녀상의 눈물 운동본부 위원장
- 2016년 ~ 2020년 제20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더불어민주당)
- 2016년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
- 2016년 6월 ~ 2016년 9월 제20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 2016년 9월 ~ 2018년 5월 제20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 2018년 7월 ~ 제20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 제20대 국회 의원외교협의회 회장(러시아), 의원외교친선협회 부회장(파라과이) · 이사(독일)
- 제20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미주소위원회 위원장
- 2016년 8월 ~ 2018년 8월 더불어민주당 대표
- 2017년 제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
- 2018년 2월 ~ 2021년 1월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위원장
- 2018년 ~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 2020년 1월 ~ 2021년 1월 제67대 법무부 장관
수상편집
- 1997년 ‘여성권익디딤돌'수상 <한국여성단체연합>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 1999년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 <시사주간지 (ASIAWEEK)>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
- 1999년 국회의정활동 행정자치위원회 최우수상 <한국유권자운동연합>
- 2000년 ‘국민화합상'수상 <국민화합운동연합>
- 2000년 ‘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선정 <한국여성유권자연맹>
- 2000년 새천년 밝은정치인상 <바른사회 밝은정치 시민연합>
- 2003년 차세대 지도자감 1위 <시사저널> (시민단체 활동가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 2004년 국민이 뽑은 정당의 최고 정치지도자 1위 <월간중앙-ANR공동 여론조사>
- 2009년 백봉신사상 수상 <백봉 나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 2012년 전자도서관 이용 최우수상 <국회도서관>
- 2013년 안중근 평화대상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 2014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 2014년 국정감사 과학기술 최우수 의정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2015년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
- 2015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5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각주편집
- ↑ 현재 403 에러, 즉, 홈페이지를 막아두고 있다.
- ↑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스무 번의 수술 끝에 생명을 건졌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에 장애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 추미애가 사랑한 남자는?…'앨범' 엿보기, TF, 2014년 9월 26일
- ↑ “'대구의 딸·호남 며느리' 秋다르크, 제1야당 '중심추'로”. 《연합뉴스》. 2016년 8월 27일.
- ↑ 조한규. 추미애, 전사 ‘추다르크`는 더이상 길이 아냐.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6년 8월 29일. 최종수정 2016년 8월 30일.
- ↑ “‘친문’이 선택한 추미애 ‘친노’와의 14년 애증사”. 2016년 9월 5일에 확인함.
- ↑ 네이버 국어사전
- ↑ [1] YTN, 민주당, "조건부 탄핵 발의" 결정, 2004-03-05
- ↑ 중앙일보, 서소문포럼, 2016-08-29
- ↑ “더민주 새 당 대표에 추미애”. 《KBS 뉴스》. 2016년 8월 27일.
- ↑ “더민주 새 대표 추미애…민주당史 첫 TK 출신 당수”. 《연합뉴스》. 2016년 8월 27일.
- ↑ “마지막 최고위 주재 추미애 "J노믹스 성공 위해 신발 끈 동여매야"”. 《한국일보》. 2018년 8월 24일.
- ↑ 경향신문, 2007-11-02 03:27
- ↑ 김동현 (2009년 12월 30일). “추미애-한나라, 노동법 개정안 강행처리”. 《뷰스앤뉴스》. 2021년 9월 25일에 확인함.
- ↑ “[종합3보]민주당 정발위 논란 지속···秋-친문간 지방선거 공천룰 갈등”. 《뉴시스》.
- ↑ 이준삼 (2017년 8월 24일). “민주당, 공천룰 갈등 극적봉합…불씨는 여전”. 《연합뉴스TV》. 2021년 9월 5일에 확인함.
- ↑ 현재 제주도를 중국판으로 만든 원흉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 ↑ YouTube 청문회 관련 집중 분석
- ↑ 노조법 개정안 통과시킨 추미애 환노위원장 동아일보 2010-01-11 2016-08-31 확인
전임 김오수(직무대행) |
제67대 법무부 장관 2020년 1월 2일 ~ 2021년 1월 27일 |
후임 박범계 |
전임 문재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
제2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2016년 8월 27일 ~ 2018년 8월 25일 |
후임 이해찬 |
전임 (성동구 갑)이세기 (성동구 을)조세형 (성동구 병)강수림 (신설) |
제15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광진구 갑)김상우 |
후임 (광진구 갑)김영춘 (광진구 을)추미애 |
전임 (광진구 갑)김상우 (광진구 을)추미애 |
제16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새천년민주당 (광진구 갑)김영춘 |
후임 (광진구 갑)김영춘 (광진구 을)김형주 |
전임 (광진구 갑)김영춘 (광진구 을)김형주 |
제18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통합민주당 → 민주당 → 민주통합당 (광진구 갑)권택기 |
후임 (광진구 갑)김한길 (광진구 을)추미애 |
전임 (광진구 갑)권택기 (광진구 을)추미애 |
제19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민주통합당 → 민주당 →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 (광진구 갑)김한길 |
후임 (광진구 갑)전혜숙 (광진구 을)추미애 |
전임 (광진구 갑)김한길 (광진구 을)추미애 |
제20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구 을) 2016년 5월 30일 ~2020년 5월 29일 더불어민주당 (광진구 갑)전혜숙 |
후임 (광진구 갑)전혜숙 (광진구 을)고민정 |
- 대한민국의 제15대 국회의원
- 대한민국의 제16대 국회의원
- 대한민국의 제18대 국회의원
- 대한민국의 제19대 국회의원
-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
- 1958년 출생
- 살아있는 사람
- 추계 추씨
- 대구광역시 출신
- 대구남산초등학교 동문
- 구남중학교 (대구) 동문
- 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
- 한양대학교 동문
- 대한민국의 판사
- 대한민국의 여자 법조인
- 대한민국의 여자 국회의원
- 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
-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동문
-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당원
- 대통합민주신당 당원
- 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
- 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
- 더불어민주당 당원
-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
- 대한민국의 불교도
- 한양대학교 교수
- 동교동계
- 건국대학교 대학원 동문
- 여자 법무장관